근육질이

"월드컵이었으면 그만했을 텐데" — 리비뇨 세 번째 런의 최가온

whatislo 2026. 10. 5. 09:34

결선 최고점 90.25 대 88.00, 2.25점 차이

2026년 2월 13일 오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 파크의 하프파이프 위에서 18세 최가온이 세 번째 런을 앞두고 섰음. 앞선 두 번의 시기는 둘 다 넘어짐으로 끝났고, 순위는 10위권 밖이었음. 첫 착지에서는 한동안 일어나지 못해 의료진이 들어올 정도였는데 그 몸으로 다시 출발선에 선 거임. 올림픽 결선의 마지막 한 번, 보는 나도 숨이 안 쉬어졌음. 이 글은 그 세 번째 런 하나만 끝까지 붙잡고 얘기하는 글임.

 

 

1. 두 번 넘어지고도 못 내려놓은 이유

1차 시기 기록은 10점대였음. 착지가 무너진 뒤에 바로 못 일어난 장면은 중계로 봐도 아찔했음. 2차는 그 여파가 그대로 이어져서 또 넘어졌고, 점수표 위에서 이름이 아래로 밀려나 있었음. 솔직히 이 시점에 "아 오늘은 여기까지구나" 했던 사람 많았을 거임. 나도 그랬음.

그런데 본인 입에서 나온 말이 이랬음. "월드컵이었으면 그만했을 텐데 올림픽이라 포기할 수 없었다". 이 한마디가 이 장면의 전부라고 생각함. 같은 종목, 같은 파이프, 같은 몸인데 대회 이름 하나가 포기와 출발을 갈라놓음. 게임으로 치면 체력바가 빨갛게 깜빡이는데 포션을 안 쓰고 마지막 콤보를 고르는 상황임.

스노보드 하프파이프는 벽에서 벽으로 왕복하며 점프를 이어 붙이는 종목이라, 앞 점프가 흔들리면 뒤가 줄줄이 무너짐. 그래서 세 번째 런은 "다음 점프 하나만" 하고 끊어 생각하는 종류의 집중이 필요함. 두 번 넘어진 사람이 그 집중을 꺼내 오는 것 자체가 기술이라고 봄.

 

 

2. 세 번째 런, 다섯 번의 점프

출발. 첫 벽을 타고 올라가는 순간부터 공기가 달랐음. 다섯 번의 점프를 연속으로 전부 성공시켰고 그 안에 900도와 720도 회전이 차례로 들어갔음. 900은 두 바퀴 반, 720은 두 바퀴인데, 이걸 파이프 벽 위 허공에서 눈을 떼지 않고 돌리고 착지까지 붙이는 거임. 콤보 게임으로 치면 입력 미스 없이 마지막 피니시까지 이어 가는 풀콤보 영상 그 자체였음.

착지할 때마다 나는 "제발 제발" 만 반복했음. 넘어졌던 자리가 다시 아플 텐데 표정이 안 무너졌음. 마지막 점프를 붙이고 나서야 관중석이 터졌고, 전광판에 결선 최고점 90.25점이 찍혔음. 순식간에 1위로 올라선 거임. 흥분해서 소리 지르다 이웃집에서 벽을 쳤음. 후회 없음.

하나 더 짚자면 두 번의 추락 사이에 있었을 몇 분이 이 장면의 숨은 주인공임. 결선 시기 사이에는 대기 시간이 있어서, 아픈 곳을 붙잡고 멘털을 다시 세울 틈이 생김. 이 시간에 포기 쪽으로 기우는 선수가 훨씬 많다는 걸 생각하면, 출발선에 다시 선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이긴 거나 마찬가지임. 시청자인 우리도 그 대기 시간에 채널을 돌리고 싶어지는데, 그때 안 돌린 사람만 다섯 번의 점프를 봤음. 그래서 결선 중계는 끝까지 켜 두는 게 정답임.

덧붙여, 하프파이프 채점은 높이·회전·착지·난도·완성도를 종합해 한 번의 런에 점수를 주고 결선에서는 세 번 중 최고점이 기록으로 남는 방식임. 그래서 앞의 두 런이 망해도 마지막 런 하나로 순위가 뒤집힐 수 있는 거임. 이 구조를 알고 보면 세 번째 런이 왜 그렇게 공격적이어야 했는지 바로 이해됨.

최가온과 클로이 김, 점수 차는 2.25점

이 점수가 더 짜릿한 이유는 상대가 클로이 김이었기 때문임. 클로이 김은 88.00점으로 2위. 차이는 2.25점이었음. 하프파이프의 오랜 여왕이 3연패를 노리던 자리를 세 번째 런으로 뒤집었고, 그것도 넘어진 몸으로 한 거임. 올림픽 공식 사이트는 이 금메달을 한국 최초의 설상 종목 금메달로 전한 올림픽 공식 기사로 남겨 놓았음. 스키·스노보드 같은 설상에서 처음이라는 말이 붙으니 더 실감이 났음.

 

 

3. 그 장면 이후에 바뀐 것, 그리고 다시 출발선

금메달 뒤에 기사들이 쏟아낸 제목은 대부분 "절뚝절뚝"이었음. 경기 후에도 다리를 절며 나왔다는 얘기인데, 그 모습이 오히려 세 번째 런의 무게를 증명해 줬음. 올림픽 공식 사이트가 따로 정리한 최가온 선수 소개 기사를 읽어 보면 이 선수가 롤모델 얘기부터 클로이 김과의 인연까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나와 있어서, 장면이 한 번 더 입체적으로 보임.

바뀐 건 선수 하나가 아니었음. 동계 종목에서 설상 금메달이라는 첫 줄이 생기면서, 다음 시즌 스노보드 중계를 켜는 사람 수가 달라질 거라고 확신함. 나만 해도 예전엔 쇼트트랙·피겨만 챙겼는데 이제 하프파이프 월드컵 일정부터 찾아봄. 중계 플랫폼을 고를 때는 스포랭크 중계 플랫폼 비교 보러 가기를 열어 보면 어디서 볼지 금방 정리됨.

기술 얘기를 하나만 덧붙이면, 이날 교훈은 "점수보다 마지막 시기 설계"였음. 세 번의 기회 중 앞의 두 번이 무너져도 마지막 런의 난이도를 낮추지 않고 오히려 5연속 고난도 점프로 채운 선택. 안전하게 가는 게 아니라 이기러 가는 구성이었음. 장비나 보드 스타일 얘기로 새고 싶은 유혹이 있는데(보드 세팅이 어땠는지 궁금하긴 함) 오늘은 참겠음. 이 글의 주인공은 세 번째 런이니까.

글을 닫기 전에 다시 그 장면으로 돌아가 봄. 리비뇨의 아침, 하프파이프 위쪽 출발선, 두 번 넘어진 18세가 보드를 고정하고 숨을 고르는 순간. 그 사람 머릿속에 들어 있던 건 순위도 메달도 아니고 "올림픽이라 포기 못 한다"는 한 줄이었을 거임. 그 한 줄이 다섯 번의 점프가 되었고, 90.25점이 되었고, 금메달이 되었음.

다음에 내 일이 안 풀려서 두 번 연속 넘어진 기분이 들 때, 나는 이 세 번째 런을 다시 돌려 볼 거임. 여러분도 그랬으면 좋겠음. 하프파이프 중계 뜨면 같이 소리 지르자, 진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