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가을부터 스피드스케이팅에 입덕한 후배가 재방송 클립 돌려보다가 톡을 보냈음. 결승선 지나고 나서 선수 부츠 뒤꿈치가 날에서 툭 떨어지는 장면을 보고 고장 난 줄 알았다는데, 그 질문 하나로 두 시간짜리 장비 토크가 시작됐음. 채팅창 스크롤이 순식간에 저 밑까지 내려갈 정도로 진지하게 파고든 밤이었음.
초보: 선배, 저거 봄? 결승선 지나고 신발 뒤꿈치가 날에서 완전히 떨어짐. 이거 방송 사고 아니야?
찐팬: 방송 사고 아니고 클랩스케이트라고 부르는 정식 구조임. 부츠 앞쪽만 날이랑 경첩으로 붙어 있고, 뒤꿈치는 스프링 힘으로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거임. 발을 뗄 때마다 짝짝 소리가 나서 이름도 그대로 클랩(박수)스케이트로 굳었음.
초보: 근데 그게 왜 필요한 건데? 그냥 통짜로 붙여 놓으면 안 됨?
찐팬: 게임으로 치면 콤보 판정 구간을 억지로 늘린 거랑 비슷함. 기존 통짜 스케이트는 발목을 펴는 순간 날 뒷부분이 얼음에서 먼저 뜸. 다리 힘은 아직 남았는데 추진력은 벌써 끊기는 거임. 클랩스케이트는 뒤꿈치만 부츠에서 떨어지고 날은 계속 얼음에 붙어 있어서, 발목을 끝까지 펼 때까지 그 힘을 전부 밀어 넣을 수 있음. 파워 새는 구간 자체를 없앤 설계임.
초보: 오 완전 신박한데. 근데 이거 왜 처음부터 안 씀? 이제야 나온 거야?
찐팬: 아이디어 자체는 1980년대 중반에 나왔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자유대학교 생체역학 교수가 원리를 계산해서 시제품까지 만들었는데, 초창기엔 선수들이 낯선 소리랑 감각 때문에 거부감이 컸다고 함. 거의 10년을 아마추어·주니어 레벨에서만 돌다가 1996~97시즌부터 네덜란드 대표팀이 먼저 정식으로 갈아탔음. ISU가 정리한 클랩스케이트 혁명을 다룬 글에도 그 전환 과정이 나옴.
초보: 그럼 1998년 나가노 올림픽 때 난리났다는 게 이거랑 관련있음?
찐팬: 맞음, 그게 바로 그 사건임. 근데 그전에 하나만 물어볼게 — 새 장비 하나 나왔다고 세계기록이 남자·여자 전 종목에서 거의 다 갈아치워지면 그게 정상임? 나가노에서 딱 그 일이 벌어짐. 선수들이 시즌 중반에 갑자기 클랩스케이트로 집단 이적하면서 개인 최고기록이 통째로 몇 초씩 당겨졌고, 링크 안이 온통 짝짝 소리로 가득 찼다고 함. 반대쪽에서는 이건 실력이 아니라 장비빨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었음.
장비 얘기가 나온 김에
초보: 요즘 스케이트도 그때 그 방식 그대로임?
찐팬: 기본 원리는 똑같은데 디테일은 많이 바뀜. 부츠는 카본 소재로 가벼워졌고, 경첩 스프링 장력을 선수 체중이랑 주법에 맞춰 조절함. 롱트랙은 날이 길고 얇아서 직선 구간에서 밀어내는 힘을 키우고, 쇼트트랙은 코너를 도니까 날이 짧고 살짝 휘어져 있어서 안 넘어지고 버티는 쪽으로 세팅함. 그래서 롱트랙 선수가 쇼트트랙 날을 빌려 신으면 코너에서는 편한데 직선에서는 오히려 힘이 덜 실린다고 다들 입을 모음. 같은 클랩 구조라도 종목마다 완전히 다른 물건인 셈임. 요즘은 부츠 색이랑 날 마감까지 선수 취향대로 맞추는 경우도 많아서, 그런 것도 은근 보는 재미가 있음.
초보: 그럼 이거 사서 신으면 나도 좀 빨라짐?
찐팬: 장비가 폼을 대신해주진 않음. 클랩스케이트는 발목을 끝까지 펴는 동작이 전제인데, 그 동작 자체가 안 되면 뒤꿈치만 덜렁거리다가 균형 잃고 넘어짐. 아마추어용 보급형도 있긴 한데, 처음 신으면 다들 한 번씩 뒤로 자빠진다고 함. 장비빨보다 발목 힘이 먼저인 종목임.
초보: 그럼 나 이번 주말에 빙상장 가서 대여 스케이트 신어보려고 하는데 거기도 클랩임?
찐팬: 일반 개방 빙상장 대여용은 거의 다 피겨화나 하키화 베이스라 클랩 아님. 클랩스케이트는 전용 부츠에 날을 따로 조립하는 방식이라 대여로는 잘 안 돌림. 체험하고 싶으면 스피드스케이팅 전문 클럽이나 실업팀 운영 링크에 문의하는 게 빠름. 처음 신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실수가 힌지 소리 무서워서 일부러 뒤꿈치를 손으로 눌러 고정하려는 거임. 그러면 클랩 구조가 아예 안 먹혀서 그냥 무겁고 불편한 통짜 스케이트가 되는 거고, 처음 몇 바퀴는 그 짝짝 소리 그대로 두고 타는 게 오히려 적응이 빠르다고 다들 그럼.
초보: 그럼 이거 반대로 예전 통짜 스케이트로 돌아가는 선수는 아예 없음?
찐팬: 없다고 봐도 됨. 나가노 이후로 국제빙상경기연맹 공인 대회에서는 사실상 전 선수가 클랩 계열로 넘어갔고, 지금은 롱트랙이든 쇼트트랙이든 클랩 구조가 기본값임. 통짜 스케이트는 이제 초등부 입문용이나 동네 링크 대여용에서나 보임. 장비 하나가 종목 표준을 통째로 바꿔버린 흔치 않은 사례라 이 얘기만 나오면 나도 모르게 신나서 계속 하게 됨.
초보: 그럼 이런 거 직접 보고 싶은데 시즌 언제 다시 시작함?
찐팬: 다음 시즌 월드컵부터 다시 풀림. 링크 사이드에서 보는 것도 좋은데 짝짝 소리랑 날 각도는 중계 화면 슬로우모션으로 봐야 제대로 보임. 시즌 개막하면 실시간 중계 보기로 코너링 구간 발목 각도만 몇 번 돌려봐도 이 얘기가 왜 나왔는지 바로 느껴질 거임.
초보: 근데 진짜 그 짝짝 소리, 직관 가면 크게 들림?
찐팬: 생각보다 훨씬 크게 들림. 선수 여러 명이 동시에 코너를 돌 때는 박수 치는 소리가 겹쳐서 링크 전체가 울리는 느낌임. 화면으로만 보면 그냥 배경 소음처럼 스쳐 지나가는데, 직접 들으면 저 소리 하나하나가 다 추진력이라는 게 확 와닿음.
정리하다 보니 결국 스피드스케이팅은 신발 얘기부터 다시 봐야 하는 종목이었음. 다음에 클립 볼 때는 결승선보다 뒤꿈치랑 그 짝짝 소리부터 먼저 챙겨 보게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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